작성일 : 21-02-18 11:02
<지성우의 Deep Read>언론 ‘징벌적 손배제’는 권력 비판 차단 위한 ‘전략적 봉쇄 소송’
 글쓴이 : 엄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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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개혁법’ 무엇이 문제인가‘위축효과’로 건전한 비판 억압…헌법상 언론의 자유와 민법상 자기책임 원리에 반해국가기관서 가짜뉴스 판단하는 건 ‘검열 금지 원칙’ 위반…권력 개입 최소화가 법치주의 원리정부와 여당이 이른바 언론개혁법을 조속한 시일 안에 통과시킬 태세다. 가짜뉴스로 인한 폐해를 방지하기 위해 인터넷상의 허위·왜곡정보를 유포한 언론인에 대한 3배수 배상제도를 도입하고, 보도로 인해 사생활이나 인격권이 침해된 경우에는 기사의 열람 차단을 청구할 수 있으며, 형법상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처벌 대상에 방송을 포함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이런 법안들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권력에 대한 언론과 국민의 비판에 재갈을 물리려는 데 큰 목적이 있다는 점에서 ‘전략적 봉쇄 소송(strategic lawsuit against public participation)’의 특징을 갖고 있다.◇위헌성과 이중처벌 문제정부·여당이 추진하는 언론개혁법안들은 몇 가지 결정적인 헌법적 문제점을 갖는다. 첫째, 언론에 대한 3배수 배상제도는 헌법상 언론의 자유와 민법상 자기 책임의 원리에 반한다. 우리 민법상 당사자의 책임은 ‘금전배상’과 ‘손해가 있는 만큼의 배상’을 원칙으로 한다. 다만 ‘하도급법’ 등 극히 예외적인 국민의 권리침해 문제, 특히 경제적인 불평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서민과 중소기업의 애로를 해결하기 위해 입법돼 있을 뿐이다. 만일 이 원칙을 무분별하게 확대할 경우에는 헌법상 자기 책임의 원칙에 반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더욱이 이 법안은 한국 형법이 서구 선진국에서는 좀처럼 처벌되지 않는 ‘모욕죄’와 ‘사실 적시 명예훼손’까지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명예훼손을 형법으로 처벌하기보다는 당사자 간 민사상의 분쟁으로 보되, 엄격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두고 있다. ‘징벌적’이라는 말은 ‘형벌에 가까운’이라는 뜻이니 민사책임이지만 형사 처벌만큼이나 당사자에게 고통스럽게 느껴질 만큼 배상액이 높은 것이다.그런데 한국에서는 명예훼손을 이미 형법에서 매우 엄정하게 처벌하기 때문에 별도로 민사상의 책임을 ‘징벌적’으로 부가하는 것은 이중처벌이다. 만일 언론의 명예훼손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담시키려면 형법에서는 삭제하는 게 선진국 사례에 부합한다.◇‘전략적 봉쇄’와 위축 효과나아가 이 규정에 따르면 인터넷상에서 언론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일반 국민도 징벌적 손해배상의 대상이 된다. 애초에는 이 법이 일반 언론사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유튜브나 인터넷을 겨냥한 것이었지만, 일반 언론사와 국민에도 적용돼 어마어마한 금액의 손해배상 액수가 적힌 소장을 받아들 날이 머지않았다는 우려가 크다. 이렇게 권력에 대한 언론과 국민의 비판을 막고 헌법적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크게 제한하려는 의도를 갖는 소송을 ‘전략적 봉쇄 소송’이라 한다. 이는 소송에서 이기는 것이 최종 목적이 아니라 막대한 액수의 배상금을 청구해 소송을 통해 언론과 국민에게 고통을 줌으로써 반대 의사 표현을 막기 위한 것이다.언론법 학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이 소송을 억제·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됐다. 징벌적 손배제를 시행하려면 반대로 언론인 보호를 위해 소송을 남발하는 사람도 민·형사적으로 강하게 처벌하는 ‘전략적 봉쇄 소송 금지법’을 함께 발의하는 것이 헌법상 형평의 원칙과 무기평등의 원칙에 부합한다.만일 이 법안이 이런 안전장치 없이 그대로 통과된다면 어떤 정권이든 정책에 대한 정당한 비판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민사소송을 제기하거나 재산을 가압류하는 방식으로 심리적·경제적인 압박을 가하고자 하는 유혹을 느낄 것이다. 언론과 국민에 대해서는 당연히 ‘위축 효과(chilling effect)’가 발생하고 정책에 대한 건전한 비판은 사라지게 된다. 이런 상황이 초래되는 것은 현재보다 더 나은 미래를 형성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언론 검열 시대로의 회귀한국신문협회 등 언론단체들이 지난해 10월 27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징벌적 손배제 등 ‘언론개혁법’과 관련한 긴급 토론회를 열고 있다. 오른쪽 세 번째가 지성우 성균관대 교수. 연합뉴스언론 보도로 인해 사생활이나 인격권이 침해된 경우 기사의 열람 차단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도 헌법상 ‘검열 금지 원칙’에 정면으로 반한다. 현행법에 의하면 언론보도가 사생활이나 인격권을 침해할 때는 언론중재위원회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의 중재나 심의를 거칠 수 있고, 최종적으로 법원의 판단을 받으면 된다. 그런데 개정안에서는 당사자가 인격권 침해를 이유로 열람차단을 청구한 경우에는 국가기관이 열람을 차단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문제는 그 신청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가짜뉴스’나 고의 여부 등을 먼저 판단해야 하는데 그 판단 주체가 누구냐 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학계의 정설은 결국 법원이 최종적인 판단자가 돼야 한다고 본다. 국가기관이 가짜 여부와 고의성을 판단하고 열람을 차단하게 하는 권한을 행사한다는 것은 우리 헌법이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 ‘검열 금지의 원칙’에 반한다. 방심위의 통신에 대한 열람 차단 제도도 가까스로 위헌 결정을 피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국제기준에 부합하는지는 회의적이다. 여기에 더해 국가기관이 언론의 기사를 가짜뉴스로 낙인 찍고 열람을 차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명백한 언론의 자유 침해이며 선진국에서는 입법 사례를 찾기 힘들다.◇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형법상의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에 방송을 포함하는 것 역시 출판물의 범위에 대해 헌법이 허용하는 확장 해석을 넘어 위헌적인 유추 해석의 가능성이 크다. 1980년대 후반 이후 사회 집단 간의 욕구와 갈등이 다양화·표면화하면서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금기시됐던 국가적·사회적 가치관에 대한 회의와 논쟁이 활발히 진행됐다. 현행 법체계는 1644년 존 밀턴(John Milton)이 저서 ‘아레오파지티카(Areopagitica)’에서 ‘금서목록을 지정하고 허가제도를 시행하는 것은 진리의 본질적 속성과 원리에 반한다’는 주장을 기초로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진리가 반드시 이긴다’는 철학을 편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법치주의의 원리에 따라 국민의 기본권은 최대한 보장돼야 하고, 국가의 제한은 최소한으로 억제돼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다수의 힘으로 언론법을 개정한다 하더라도 이 헌법 원칙을 준수하지 않았던 ‘인터넷 실명제’ 등이 모두 폐기됐던 역사는 다시 반복될 것이다. 민주주의는 최종적으로 다수결이 아니라 헌법 원칙에 의해 수호되고 있기 때문이다.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철우언론법상 수상자■ 세줄 요약징벌적 손배제와 이중처벌 : 언론의 명예훼손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헌법상 언론의 자유와 민법상 자기 책임의 원리에 반함. 이미 형법에서 명예훼손을 엄중 처벌하기 때문에 별도로 민사상의 책임을 ‘징벌적’으로 부가하는 것은 이중처벌임.‘전략적 봉쇄’와 위축 효과 : 징벌적 손배제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소송이라는 점에서 ‘전략적 봉쇄 소송’임. 징벌적 손배제를 시행하려면 언론 보호를 위한 ‘전략적 봉쇄 소송 금지법’도 있어야 함. 그렇지 않으면 ‘위축 효과’로 권력 비판이 사라질 것.언론 검열 시대로의 회귀 : 국가기관이 가짜뉴스 여부와 고의성을 판단하고 열람을 차단하게 하는 권한을 행사한다면 이는 ‘검열 금지의 원칙’에 반하는 것. 국민의 기본권이 최대한 보장되고 국가의 제한이 최소한으로 억제되는 게 법치주의의 기본 원리임.■ 용어 설명‘전략적 봉쇄소송’이란 권력이 언론과 국민의 비판활동을 봉쇄하려는 목적으로 벌이는 소송. 분쟁의 해결이나 승소보다는 일반 대중의 참여를 위축시키는 것에 목적이 있어 ‘소권 남용’이란 지적이 많음.‘아레오파지티카’는 표현의 자유를 찬양함으로써 자유언론의 기틀과 사상적 기반을 제공한 존 밀턴의 책. 1644년 발간. 허가받지 않고 인쇄할 자유를 위해 영국 의회에 보내는 밀턴의 글을 담고 있음.[ 문화닷컴